부산여성가족개발원 출판, 「여성우리」 제65호 비혼 출산 이슈 기고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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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4B운동’(비연애, 비결혼, 비섹스, 비출산)이 일어나면서 비혼을 결의하는 젊은 페미니스트들이 크게 늘었다. 꼭 페미니즘적 실천이 아닐지라도, 2030여성의 비혼 선호는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다. 30대 여남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인구보건복지협회의 작년 조사를 보면 “성공하거나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을 선택할 것이다”라는 질문에 여성의 67.4%가 비혼을, 남성의 76.8%가 결혼을 선택했다. 이 차이는 가부장제가 성실히 작동하고 있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결혼제도가 어떤 방식으로 기능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지표다. 여성청년의 생애기획은 분명 달라지고 있다. 비혼의 원인을 묻고 ‘대처’를 강구하는 시점을 지나 이제는 비혼이 평범한 생활방식의 한 형태가 될 수 있도록 여성계 바깥에서도 정치적 의제화를 진행해야 하는 때가 온 것이다. 변화가 시작되었으니 우리는 이제 새로운 안건에 대해 떠들 차례다. 비혼과 출산은 서로 배치되는 욕망이 아니다. 주변의 2030여성들에게 왜 비혼 출산을 지지하냐고 물어봤을 때 돌아오는 대부분의 대답은 ‘그러지 않을 이유가 딱히 없기 때문’이라는 말이었다. 위에서 언급했던 4B운동을 실천하는 친구도 대답은 같았다. 4B운동이라고 해서 아이를 낳고 기르고자 하는 여자들을 경천동지할 얼굴로 쳐다보진 않는다. 출산과 육아를 선택하고자 하는 여성의 욕망은 기혼과 비혼을 가리지 않고 충분히 성립 가능하다. 여성 청년들이 사유리에게 크게 호응하는 이유는 그가 이 당연한 사실을 드러내보였으며,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논의를 확장했기 때문이다. 비혼과 출산은 서로 배치되는 욕망이 아니다. 가족을 구성하는 일에 있어 가부장적 결혼 제도는 옵션에 불과해야 한다. 사유리는 여성이 결혼에 묶여 사회경제적 활동을 제약당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가족을 만들 수 있다는 새로운 전망을 보여줬다. 일부 대중에게 이기적이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지만, 역사 속에서 남성과 동등한 삶을 누리려하는 여성은 늘 이기적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사유리와 그를 응원하는 여성 청년들에게 붙는 ‘이기적’이라는 딱지는 커리어를 희생하지 않아도 자녀를 얻을 수 있는 삶, 무엇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삶은 남성에게만 허락된 것이라는 차별적 사고를 증명한다. 한편, 사유리를 향한 여성 청년들의 이러한 열화와 같은 성원은 모든 여성에게 보장되어야 할 재생산권에 대해 한 번 더 재고하게 만든다. 신자유주의 정치가 재생산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장 분명한 방식 중 하나는 바로 출산했을 때 유급 휴가를 주지 않는 것과 직장에 복귀할 때 일자리를 보장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비혼 여성의 재생산권 접근을 어렵게 하는 구조적 요인이 된다. 경제인구가 혼자 뿐인 1인 가구 비혼 여성에게 출산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선택지다. 사유리가 비혼 출산을 감행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가 유급휴가와 직장복귀가 필요 없는 직업을 가졌다는 사실이 분명히 작용한다. 사유리의 비혼 출산은 가족을 구성하는 일에 결혼이 필요 없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임과 동시에, 결혼 제도 바깥에 있는 여성이 재생산권을 갖기 어려운 이유를 함께 드러낸다.재생산권이 여성의 권리인 이상, 아이 낳을 권리가 왜 어떤 여성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권리가 아닌지 지적이 필요하다. 아빠 없이, 결혼 없이―비혼 출산이 우리에게 혁명적인 이유 파이어스톤은 『성의 변증법』에서 처녀 출산(virgin birth)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여기서 처녀 출산은, ‘처녀성’에 대한 남성사회의 징그러운 기대와 환상을 반영한 동정녀 잉태신화와는 맥을 완전히 달리한다. 아버지-남편이 삭제된 개념이기 때문이다. 나는 비혼 출산의 가장 중요한 방점은 남성의 부재가 자연스러운 것처럼 느껴진다는 점에 찍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혼 출산은 남성이 완전히 제거된 세상에서도 여성은 여전히 유의미하고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탈가부장적 비전을 제시한다. 오랜 기간 가부장제는 부계 혈연과 가족을 동일시해왔다. 아이에겐 아버지의 성씨를 물려주는 것이 일반이며, 아버지 없는 가정은 어머니 없는 가정보다 미성숙한 가정-요보호 가정으로 다뤄졌다. 임신 중지나 미혼모 이야기가 나오면 몸을 ‘막 굴려서’ 임신한 거라며 임신을 여자 혼자 하는 것처럼 여기더니, 정말 여자 혼자 임신하니 이제는 아버지 없이 살아갈 아이가 불쌍하지도 않냐며 180도 달라진 태도를 보인다. 사유리의 비혼 출산에 이어지는 기성사회의 반발과 법·제도의 공백은, 남성과 남성을 대변하는 국가가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진실을 비춘다. 여성만이 재생산할 수 있다는 것. 비혼 출산은 기존 권력체계의 전복을 예고한다. 우리는 아버지의 존재가 거세된 신인류의 출현을 환영한다. 그리고 이것은 이미 아버지 없는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남편 없는 여성-미혼모 처우 개선과도 당연히 이어지는 이야기다. 비혼 출산을 응원한다면서 흔히 사람들은 ‘능력 있는 사람은 혼자 애 낳고 살아도 된다’고 말하지만, 비혼 출산이 양육이 가능한 개인의 경제적 조건에 달려있어선 안 된다. 비혼 출산을 ‘허가’ 혹은 ‘용인’하는 사회논리가 ‘자력으로 출산과 육아가 가능한 여성은 괜찮다’가 되면 공공자원의 분배가 따라올 이유가 떨어진다. 이는 이미 혼자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는 미혼모에게도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중요한 것은 출산이 여성의 오롯한 자주적 선택이어야 하며, 권리라는 점이다. 그리고 권리는 제도를 요구할 열쇠다. 사유리의 비혼 출산은 정상가족 바깥에 대한 상상을 확장하고 제도의 테두리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를 구체화 한다. ‘정상’이 더 이상 안전하게 느껴지지 못하는 2030여성 세대가 그를 지지하는 또 다른 이유다. 그런데 노파심에 한 마디 덧붙이고 싶은 문제가 있다. 어떤 남성들은 사유리의 비혼 출산을 통해 자신들의 번식 욕망을 엉뚱하게 자극받은 모양이다. 대리모 논의를 끌어오려는 반응들이 벌써 눈에 띈다. 권리의 ‘권’자만 붙으면 당연히 남성이 포함될 거라 생각하는 것 같다. 그게 아니라는 걸 납득시키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과 지난한 투쟁이 필요하다. 그러니 불필요한 논의 는 미연에 차단하자. 정말이지, 우리에겐 언제나 안건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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